정신분석학 창시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을 향한 자기파괴적 본능이 있다. 자살의 심리를 정의하긴 어렵지만 약해진 자아가 파괴적 본능을 내부로 발산할 때의 공격성이 표면으로 나타난 결과라 할 수 있다.

자살의 치명성은 전염에 있다. 18세기 괴테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 후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소설 속 주인공처럼 모방 자살이 번지기 시작한 사회적 현상이 낳은 ‘베르테르 효과’가 보여준다.

특히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지인을 잃었을 때의 충격은 평소 억제돼 있던 죽음의 본능을 강렬하게 깨운다.

정신분석학 창시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을 향한 자기파괴적 본능이 있다. 국가가 이 본능을 제도적으로 억제하지 않고 방치하면 국가, 사회적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사진=픽사베이
정신분석학 창시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을 향한 자기파괴적 본능이 있다. 국가가 이 본능을 제도적으로 억제하지 않고 방치하면 국가, 사회적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사진=픽사베이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발표한 '2015~2021년 심리부검 면담 분석 결과'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망자 10명 중 4명(42.8%)는 이전에 자살로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유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족 10명 중 6명(59.5%)은 면담 당시 자살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또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5개년(2013∼2017) 전국 자살사망 분석 결과보고서’에 의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장소는 자택(연평균 56.7%)이었다.

이와 같은 통계는 가족 등의 자살이 또 다른 죽음으로 이어지는 연쇄반응으로 나타난다는 것으로 이들에 대한 사후관리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생명운동 네트워크 ‘생명존중시민회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생명은 한 번 잃으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고,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며, 한 사람의 생명은 전 지구보다 무겁고 또 귀중하고도 엄숙한 것이며 존엄한 인간존재의 근원인 것이다.”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또 연도별 자살자 수 추이와 함께 자살률이 OECD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한민국 사회가 심각한 생명위기 상황에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생명존중시민회의는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 풍토를 생명존중의 사회로 만들고 OECD 자살율 1위의 불명예를 떨치기 위해 지난 2014년 3월 사회 원로와 교계 지도자, 학계, 시민운동 지도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설립 당시에는 생명문화라는 이름으로 출범해 활동해 오다 생명존중시민회의로 확대 개편됐다.

단체는 “범국민적 참여를 통해 사회적, 국가적인 차원의 동력을 불어넣는 활동을 펼친다. 각종 제도개선과 정책 활동, 교육과 캠페인, 기업이나 기관 등과 연계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생명운동을 펼쳐 자살률을 실질적으로 낮추고자 한다”며 활동 목표를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 생명존중 및 자살예방 관련 정책 감시와 주창활동 ▲ 생명존중 문화 형성을 위한 시민교육 ▲ 생명존중의식 함양을 위한 문화 컨텐츠 개발 및 보급 ▲ 생명존중과 자살예방 관련 정책개발 및 대안 제시 ▲ 생명존중을 위한 시민 네트워크 조직 및 정보공유, 참여 활동 전개 ▲ 기업, 기관, 종교계 등과 생명존중 공동 캠페인 전개 등을 구체적인 사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생명존중시민회의는 자살예방을 위해 다양한 사업 활동을 파고 있다./사진제공=생명존중시민회의
생명존중시민회의는 자살예방을 위해 다양한 사업 활동을 파고 있다./사진제공=생명존중시민회의

 

자살예방·생명살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

지난 9월에는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한국생명운동연대와 함께 정책자료집 ‘자살유가족 종합 지원 안내’를 번역, 출간했다.

일본 자살종합대책추진센터가 지난 2018년 발행한 ‘자살유가족 돕기 위하여 – 종합 지원 안내’를 생명존중시민회의 임삼진 상임이사와 경남종합복지관 조정우 박사가 번역,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육성필 교수가 감수해 낸 자료집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자살유가족이 직면하게 되는 과제와 지원의 지향점, 정부 차원의 종합적 지원대책에 관한 정보제공과 자치단체의 역할을 소개하고 있다. 또 학교와 직장에서의 사후대응 방안, 공공기관 직원 및 민간사업자의 적절한 대응방안 및 자살 유자녀에 대한 지원 등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현실에서 부딪치게 되는 유가족 자조모임 안내, 유가족이 직면하게 되는 법률문제의 기초지식, 직장 및 학교에서의 사후 대응방안 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임삼진 상임이사는 언론을 통해 "이 자료는 일본의 자살유가족 지원이 정부나 기업, 학교 등에서 얼마나 촘촘히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며 "자살유가족 지원을 위한 사회적 체계망을 우리가 어떻게 짜나가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 자료를 번역 발간했다"고 발간 취지를 밝혔다.

생명존중시민회의는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 자살대책기본법 내용 한 대목을 소개하고 있다.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 자살대책기본법

제2조 자살 대책은 삶을 위한 포괄적인 지원으로서, 모든 사람이 소중한 개인으로 존중됨과 동시에 살아갈 힘을 기초로 보람과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도록, 그 방해가 되는 여러 요인의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원과 그것을 지탱하고 촉진하기 위한 환경의 정비가 폭넓고 적절하게 도모하는 것을 취지로 실시되어야 한다.

2. 자살 대책은 자살이 개인적인 문제로서만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있음을 감안하여 사회적 대책으로서 실시되어야 한다.

3. 자살 대책은 자살이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 및 배경을 가진 것임을 감안하여 단순히 정신보건적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자살의 실태에 입각하여 실시되어야 한다.

4. 자살 대책은 자살의 사전 예방, 자살 발생의 위기에 대한 대응 및 자살이 발생한 후 또는

자살이 미수에 그친 후의 사후 대응의 각 단계에 따른 효과적인 시책으로서 실시되어야 한다.

5. 자살 대책은 보건, 의료, 복지, 교육, 노동, 그밖에 관련 시책과의 유기적 연계를 꾀하고 종합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생명존중시민회의 임삼진 상임이사는 정치권과 우리 사회를 향해 "자살이 만연한 사회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사진제공=생명존중시민회의
생명존중시민회의 임삼진 상임이사는 정치권과 우리 사회를 향해 "자살이 만연한 사회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사진제공=생명존중시민회의

 

"국가가 무능한가? 이대로 현상 방치해선 안 된다"

지난달 마친 '2022 생명사랑 유튜브영상 공모전'도 생명존중시민회의의 활동 목표 달성을 위한 사업의 한 부분이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자살예방 메시지를 담은 유튜브 영상들이 자살을 예방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사회자본으로 활용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임삼진 상임이사는 10여 년 활동하면서 수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머릿속에 여러 장면과 감정이 교차하며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했다.

“몇 해 전 한 국책연구기관에서 자살 예방과 관련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살을 결심하고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던 한 분이 제 강의를 듣고 이메일로 상담을 요청해 왔어요. 한 달에 걸친 오랜 상담 끝에 그분이 자살 생각을 버리고 자신을 힘들게 여러 요소에서 회복력을 되찾은 일이 있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이 살아나는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꼈어요. 물론 좌절을 느꼈던 때도 있었죠.

문재인 정부 출범을 위한 인수위원회 시기에 ‘자살 줄이기를 국정과제로 채택할 것’을 시민단체 대표들과 함께 요구했고, 그게 받아들여져 자살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기대가 실망과 좌절로 바뀌었죠. 4년간 감소하던 자살 사망자 수가 2018년에 무려 9.7%가 증가했습니다. 적폐청산이라는 외침과 더불어 사회 갈등이 심해지고 진영과 진영논리가 강화되면서 자살이 크게 증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좌절감이 무척 컸어요.”

그러면서 그는 특히 정치권의 각성을 강하게 촉구했다.

“소중한 생명이 매년 1만 3천 명 넘도록 스러져가고 있는데, 자살을 줄이기 위해 대통령과 정부, 국회는 과연 무엇을 해 왔습니까? 우리나라가 이런 불명예와 수치를 계속 유지해도 괜찮은 그런 나라인가요? 그렇게 생각 없고, 무능한 국가인가요? 충격을 넘어 슬픔을 느낍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자살은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더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자살을 줄이기 위한 대통령과 정부, 국회의 즉각적인 행동을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생명존중시민회의는 대통령 직속 자살대책위원회 설치를 촉구하는 등 자살을 줄이고,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임 상임이사는 “며칠 전에도 각계인사 231명의 서명을 받아 대통령 직속 자살대책위원회 설치, 자살 증가에 대한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과, 자살대책기본법 제정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만,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생명문화의 확산과 참여를 위해 지난 3년간 매년 해온 생명사랑유튜브영상공모전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상담자를 위한 지침서인 <자살 유가족 지원 노하우> 발간이나 <산후 우울증, 힘들다고 말하세요> <앗! 내가 군인이라니>와 같은 생명존중 동영상 교육자료를 제작하는 자살예방 인프라 구축, 즉 사회자본을 계속 확충해 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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