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註> ‘강한 시민사회’의 풀뿌리는 비영리 시민단체다. 그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흘리는 땀과 정열 뒤에는 수천 수만 개의 시민단체들이 있다. 그들의 희생은 건강한 사회와 높은 삶의 질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NGO저널은 창간 기획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는 시민사회단체를 조명하고,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가는 NGO들이 어떻게 희망을 준비하고, 무슨 고민을 하는지 시리즈로 심층 연재한다. 

한국은 우울한 나라다. 통계 지표가 말해준다. 지난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사망원인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다.

OECD 국가 간 연령표준화 자살률(OECD 표준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에서 한국은 23.6명을 기록해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이는 OECD 평균 11.1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 한국을 제외하면 해당 통계에서 20명이 넘은 나라는 리투아니아(20.3명, 2020년 기준)가 유일했다.

특히 심각한 건 10대(10~19세)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이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10대가 3배 이상이다. 20대와 30대의 사망 원인 1위도 자살이다. 40·50대는 다를까? 1위 악성신생물(암 등 비정상적인 조직)에 이어 자살이 사망 원인 2위다.

최근 들어 20대 여성 자살률은 더 심각한 경향을 띈다. 보건복지부 ‘2021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9년 20대 여성 자살률은 2018년에 비해 25.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7년 동안 자살률 1위, 우울증 치료율은 OECD 최저, 이게 ‘우울한’ 한국의 현주소다.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이 가득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10~30대 자살률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국가발전 뿐 아니라 국가를 이루는 국민, 즉 개인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정책적 고려가 시급하다./사진=픽사베이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10~30대 자살률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국가발전 뿐 아니라 국가를 이루는 국민, 즉 개인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정책적 고려가 시급하다./사진=픽사베이

 

절망 끝에서 건진 ‘삶의 의지’ 한국자살예방시민연대

이 같은 사회의 모습은 2012년 3월 출범한 한국자살예방시민연대(한자연)의 배경이 됐다. 한자연을 설립한 박세준 회장은 사업과 정치에 도전하며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았지만, 행운의 여신으로부터 외면당했다는 좌절감에 한때 극단적인 생각을 품게 됐다고 한다.

박 회장은 “아내는 백혈병으로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는 상황이었고, 결국 막다른 지경에 이르러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 보면 고난과 역경이 많았는데 정말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때는 우울증도 있었고, 옆에 제 손을 잡아줄 사람도 없었다. 세상이 너무 무심하게 느껴졌다. 늦은 밤 정처 없이 홀로 떠돌아다니기도 했고 온갖 생각에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현실을 생각해 극복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저 하나 믿고 지금까지 살아온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면 결코 해서(자살)는 안 될 일이었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87년 박형오 전 의원(무안·신안) 비서로 스물일곱에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박 회장은 일에 큰 보람을 못 느꼈다고 한다. 이듬해 결혼한 뒤 사업에 뜻을 두고 비서일을 그만둔 그는 군복을 납품하는 무역사업을 시작했고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남아공으로 이민을 가 무역업으로 큰 성공을 맛봤다.

그러나 성공의 기쁨도 잠시, 90년대 남아공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으로 가진 재산을 거의 날리고 4년여 시간을 보낸 뒤 빈털터리로 귀국하게 됐다. 그러다 다시 사업과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2008년 8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시련은 끝이 아니었다. 아내마저 백혈병에 걸렸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광야의 거친 삶 앞에서도 당당했던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고 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주위 환경이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갈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닿자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락의 바닥에서 그를 잡아 끌어올린 것은 시민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의지였다.

“다시 마음을 차분히 갖고 저를 위해, 가정을 위해 그리고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봤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한국자살예방시민연대였다”

박 회장은 한자연 활동 중 2012년 9월 마포대교 '생명의다리' 선포식 관련 활동을 가장 잊을 수 없는 보람된 순간으로 꼽았다. 사진은 '생명의다리' 선포 후 외신 및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 하는 모습/ 사진제공=한자연
박 회장은 한자연 활동 중 2012년 9월 마포대교 '생명의다리' 선포식 관련 활동을 가장 잊을 수 없는 보람된 순간으로 꼽았다. 사진은 '생명의다리' 선포 후 외신 및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 하는 모습/ 사진제공=한자연

 

인본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자살예방운동단체

이 같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력은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한자연 설립 취지문에 묻어난다.

“우리 단체는 인간존중과 생명사랑의 인본사상을 설립이념으로 하며, 노인을 비롯한 장애인, 여성 등 취약 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 살고 싶은 대한민국, 살맛나는 대한민국 만들기에 뜻을 같이 한 시민단체들의 자발적 동참으로 설립된 범국민 자살예방운동단체입니다.”

한자연은 보건복지부 산하 비영리민간단체로 300개 단체가 연대해 현재 전국 150개 지부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 ‘천지지간 만물지중 유인최귀(天地之間 萬物之中 惟人最貴)’이 설립이념이다.

박 회장은 “‘천지 사이에 있는 만물의 무리 가운데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라는 뜻으로 몸소 느낀바 경험을 통해 깨달은 진리라고 생각했다”며 “OECD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 더구나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로 인한 베르테르 효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자살은 한순간의 선택일 수 있지만, 주위 사람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가족, 친척, 그리고 이웃을 생각해 보라.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자살을 하는 사람은 이유가 있다. 다만 그 이유를 부모한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쉽게 생명의 끈을 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살하는 사람은 대부분 암시를 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며 “우리 단체가 그 누군가의 손과 귀가 되어 소중한 생명을 구한다면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자연은 인본사상을 바탕으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사진=픽사베이
한자연은 인본사상을 바탕으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사진=픽사베이

 

자살공화국 오명을 벗고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한자연의 활동은 오래됐다. 직장인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스트레스 Zero” 프로그램으로 2012년 새해 쉼투어를 진행했다. 단체 출범 후 조직을 정비하면서 5월 가정의 달 행사로 청소년 자살예방 캠페인을 벌였다.

전문 강사를 초빙해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확산을 위해 국내 최초로 자살예방토크쇼를 진행했고, 자실예방 및 생명존중 관련 법 연구 및 자살예방 사이버 문화조성 전략 연구 등의 전문 교육도 이루어졌다.

대선을 앞둔 12월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강지원 후보 등 ‘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이 말하는 자살문제와 해결책’ 취지의 ‘국민희망토크쇼, 대권주자에게 듣는다’라는 제목으로 서면 인터뷰를 실시해 공개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그해 9월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선포식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투신자살 1위 다리’라는 오명이 붙은 곳에서 한국의 자살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세계최초로 ‘스토리텔링 생명의 다리 인지 홍보’를 진행하며 자살예방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일이 주는 보람과 행복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다리 난간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희망적 메시지를 하나씩 새겼고, 두 사람이 위로하는 모습을 담은 동상을 설치했다”며 “세상을 더 행복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밟았던 큰 첫발자국이었기에 지금 생각해도 기쁘고 보람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한자연은 그 밖에도 ▲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조성 교육, 상담 및 캠페인 ▲ 대상별 안전(청소년, 노인, 여성, 군인 등)에 대한 교육 ▲ 트라우마 힐링, 인성, 인권 및 생명존중 전문강사 및 상담사 육성 교육사업 ▲ 자살자 유가족 지원 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 ▲ 자살예방교육을 위한 평생교육원 설치 및 운영 ▲ 청소년 안전(성폭력, 학교폭력, 자살, 왕따, 흡연) 문화조성 교육 및 캠페인 ▲ 관련 국내외 단체와의 자살예방문화 교류 ▲ 노인복지시설 설립, 운영 및 노인일자리 확대사업 등 자살 예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설립 10주년을 맞은 한자연은 앞으로도 관련 사업을 더욱 확장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박 회장은 “사회단체 활동을 통해 제가 얻은 것은 생명의 소중함”이라며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대한민국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씻도록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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