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균 NGO저널 편집장
박봉균 NGO저널 편집장

최근 2년간 육아휴직 후 복귀율이 100%에 달하는 일터가 있습니다. 복직자에게 근로자지원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근무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근로자가 성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심리적인 문제들을 완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입니다. 육아휴직 스트레스로 끙끙 앓기보다는 출산후 재충전과 안정적 업무복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출산 시대에 정보통신산업진흥원(2023, 노동부 사례집)이 일궈낸 예상 밖 변화입니다. 

직원들의 ‘라이프 사이클 맞춤형’ 지원도 화제입니다. 결혼·임신·출산·육아·교육 생애 주기에 맞춰 난임치료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업무 효율까지 높였습니다. 임직원들의 호응이 높다보니 최근 3년간 변화가 나타났고, 2021년엔 남성 육아휴직자가 여성을 뛰어넘었다고 합니다. 2019년부터 저출산에 대비해 포스코(2023, 노동부 사례집)가 도입한 가족친화형 프로그램입니다.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들의 출산·육아지원제도 이용 비율은 2019년 23.8%에서 2020년 29.2%, 2021년 30.6%, 2022년 34.8%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초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난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업들이 다양한 해법을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기업에 따라 그 내용이 현실과 딱 들어맞진 않겠지만 인기있는 프로그램의 경우 우리의 초저출산 현실을 반영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유심히 살펴보게 됩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재원을 쏟아붓고 있는데 비해 얻는 결과물보다 그 효용이 높기 때문입니다. 출산율도 기업 경쟁력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기업들만의 고군분투로 출산율을 기대한 만큼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저출산 정책을 가임 인구의 욕구와 현상 측면에서 접근한 이들의 해법은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의 출산 기피의 핵심은 고용 불안, 높은 양육·교육비 부담, 육아·교육관련 가사의 여성 전가 등이 자리합니다. 요약하면 경제적 부담과 여성의 사회활동 방해입니다. 진흥원과 포스코 같은 기업의 가족친화제도는 출산율 하락이 좋은 일자리 부족과 관계가 깊다는 현장의 사고(思考)를 반영한 것입니다.  

정부가 대기업 일자리 늘리기와 중소기업 지원을 통해 모성보호제도를 제대로 활용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매우 중요함을 의미합니다. 현행 제도나 정책은 있더라도 현장에서 집행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현실입니다. 기업 형편에 따라 많은 여성 근로자가 실제로 모성보호제도의 혜택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여성가족부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력단절 이후 재취업했을 때 일자리의 질은 대체로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컨대 상용근로자 비중은 36.7%p 하락하고, 임시근로자 비중은 9.4%p 상승하며, 고용원 없이 일하는 자영업자 비중은 16.4%p 상승합니다. 이처럼 경력단절 후 재취업할 때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여성 근로자는 출산을 미루고 계속 일하거나, 출산하고 난 다음에 는 재취업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출산율이 낮은 문제와 여성 고용률이 낮은 문제는 상당 부분 좋은 일자리의 부족에 기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와함께 출산 · 육아와 무관하게 안 좋은 일자리 자체가 여성의 퇴직을 유도하고 이들의 재취업을 방해하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보고서가 이를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경력단절 여성이 일을 그만둔 이유 중 임신(21.3%), 출산(19.8%), 육아(13.9%)가 55.0%를 차지했으나 근로조건도 26.1%를 차지했습니다. 근로조건의 비중은 특히 25~29세(77.5%) 및 30~34세(43.4%)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보였습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모성보호제도를 통해 깜짝 출산율을 이뤄낸 한국 기업들의 해법이 무릎을 치게 만들 새로운  제도와 지원 덕분은 아닙니다. 예컨대 임신한 지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인 근로자의 경우 하루 3시간까지 단축근무를 할 수 있도록 법정 기준 1일 최대 2시간보다 1시간 더 많게 배려한다거나, 출산휴가 후에는 별도의 신청 절차 없이 자동으로 육아휴직이 적용됩니다.

‘자녀돌봄 단축근무제’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자녀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려면 부모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해당 직원은 하루 1시간씩 근무시간을 단축하여 자녀를 등교 시키고 10시 이후에 출근하거나 오후 5시에 퇴근해 자녀를 돌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임금 삭감은 없습니다. 

법으로 지원 중인 ‘모성보호’에서 한 단계 나아가 아빠도 육아에 힘쓰라는 차원에서 만든 ‘부성보호제도’ 역시 기업의 역발상입니다. 이 제도를 도입한 곳이 중소기업이라 금전적 지원은 하지 못하지만, 직원이 꼭 필요한 제도로 만족도가 높다고 합니다. 자녀 초등학교 입학식, 배우자 태아검진 때 연차와 별개로 유급 휴가를 남성 직원에게 제공하거나 가족돌봄휴가도 남성 직원들이 연평균 3일 사용한다고 합니다. 

초저출산의 여러 요인들은 정부가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기업 지원을 통해 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도 많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도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 정부는 세제혜택이나 규제완화 같은 여건을 마련해야합니다. 노사관계도 생산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관련 제도를 수정 ·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구절벽에 불안한 지방정부도 가능한 범위에서 이러한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구조개혁 없이 현재의 초저출산 흐름이 이어지면 ‘성장-분배’ 양면에서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란 경고음은 임계점입니다.

 

저작권자 © NGO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