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균 NGO저널 편집장
박봉균 NGO저널 편집장

‘상위 10퍼센트와 하위 10퍼센트의 소득격차 20배’. GDP 세계 6위의 경제대국 영국이 유럽에서 가장 양극화가 심한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수많은 관광객으로 활기가 넘치는 런던의 그 화려함 뒤에 중산층이 체험하는 것은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균형입니다. 사정이 악화됐던 2018년 1분기 기준 영국인 200명 가운데 한 명 정도가 노숙자였습니다.(자선단체 셸터 자료) 세계 세번째로 높은 주거비에 실업률까지 치솟으며 사회보장 혜택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옥스퍼드대는 경제·사회적 불평등이 어떻게 사회문제로 번지는지 영국 사회가 그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경제강국이면서도 불평등으로 골머리를 앓는 영국의 현실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달 발표된  ‘SDG 이행 현황 2024’ 보고서(통계청)와  ‘지역경제보고서 이슈분석’ 자료(한국은행)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현상이 2015년 이후 더욱 심화되면서 시민사회의 공존마저 위태롭다는 징후를 보여줍니다. 계층간 지역간 젠더간 장벽을 허물기가 더욱 힘들어 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SDG(한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취약성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지역·집단 간 불평등 해소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불평등의 증폭으로 SDG 지향점은 요원해지는 상황입니다. (이 자료는 전 세계가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2030년까지 공동 달성하기로 합의한 17개 정책(사회·경제·환경·에너지 등 분야) 목표를 평가한 글로벌 공식 데이터입니다.)

개인의 삶의 질을 평가한 웰빙 관련 지표부터 따져볼 일입니다. 역대 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의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하는 주요 지표입니다.  ‘아무도 뒤처지지 않는(Leaving No One Behind)’ SDG를 달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웰빙은 의료, 성별, 연령, 소득 수준, 지역별로 드러나는 격차 해소입니다. 

우선 공공의료 위기대응 체계의 한계를 다시금 절감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의료의 대도시 집중으로 인한 지역간 불균형의 심화 탓입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대도시 집중화가 더 심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서울에서는 2011년과 2021년 사이 의사가 인구 천 명당 2.9명에서 3.9명으로, 간호사가 3.0명에서 6.2명으로 크게 증가한 반면, 충북에서는 같은 기간 의사가 1.7명에서 1.9명으로,간호사가 1.8명에서 3.1명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칩니다. 

보건의료인력이 대도시로 집중됨에 따라 권역 내 쏠림 현상도 심각합니다. 부산과 경남의 의사 수 차이는 2011년에 0.7명이었으나 2021년에는 0.9명으로 커졌습니다. 같은 기간 대구와 경북의 경우에는 0.8명에서 1.3명으로, 광주와 전남의 경우에는 0.4명에서 0.7명으로, 대전과 충남의 경우에는 0.8명에서 1.1명으로 격차가 벌어집니다. 특히 대구경북권에서 인력 쏠림이 두드러집니다. 

교육기회의 확대, 교사 질의 확보 역시 불평등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기초학력미달 수준의 중·고등학생 비율이 최근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코로나19 이후 크게 감소한 평생교육 참여율 역시 2022년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SDG 목표에서 강조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은 청소년과 성인에서 비교적 높게 나타나지만 성, 연령, 지역에 따라 뚜렷한 격차를 보입니다. 최근 한국 교육계에서 경험하고 있는 교권 붕괴와 관련한 잇단 사태가 이 같은 불평등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은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집중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의회와 행정부, 그리고 기업 내에서도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대표와 관리자급 중 여성의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가사와 육아에서 여성에게 더 많은 책임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여성 노동자는 남성 노동자보다 일-가정 양립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2022년 기준 성폭력 및 가정폭력에서 여성 피해자 비율은 각각 81.0%, 87.4%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절대적으로 높은 피해율을 보였습니다. 주민직선으로 교육감을 선출하기 시작한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총 67명의 교육감이 선출됐으나, 이 중 여성은 5명에 불과합니다. 정부, 입법부, 민간기업에서의 여성관리자 비율은 OECD 평균 34.2%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14.6%에 해당, 전반적으로 여성의 대표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지역경제보고서 이슈분석’ 역시 사회의 취약계층을 더욱 소외시키는 지역간 불평등 해법이 난제임을 지적합니다. 경제성장률(GDP)에 대한 수도권 기여율은 70%에 달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소득 차는 더 커졌습니다. 민간 소비 측면에서 지역 간 격차는 오히려 확대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청년 인구의 대도시 이동에 따른 인구 고령화 가속화, 소비 인프라 부족 등으로 지방의 평균소비성향이 대도시보다 더 크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두 보고서는 불평등과 계층사다리, 경제적 불안정 등 국민 삶의 질을 측정한 공식 자료라는 점에서 정부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한 현실을 투영합니다. 이는 국가-시민사회 간의 신뢰에 대한 성찰이자 상징적 지표이기도 합니다. 정부가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시민사회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고, 정부는 신뢰 회복을 위한 효율적 정책을 끊임없이 따져야합니다. 

‘무연사회(無緣社會)’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의료·교육·성별·지역간 불균형과 불평등 사회, 각자도생의 시대를 ‘혼자 살다 혼자 죽는다’는 씁쓸한 의미입니다.  ‘공존할 수 있다’는 신뢰가 없다면 사회적 자본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시민 구성원간의 배려, 돌봄과 같이 공동체 협력을 촉진시킬 수 있는 것이 사회적 자본입니다. 차별과 분리없이 섞여 사는 공공(公共) 공간을 의미하는 ‘소셜 믹스(social mix)’의 노력이 절실한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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