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註> '빙고(biNGO)!'는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촌철살인의 메시지와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배종찬 NGO저널 편집위원의 전문 칼럼입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시민사회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합니다. 정답을 맞혔거나 뜻밖의 결과에 기쁨을 표현하는 ‘빙고’. 시민의 삶과 사회 현실, '빙고(biNGO)!'가 외치겠습니다.

배종찬 NGO저널 편집위원
배종찬 NGO저널 편집위원

이태원 참사로 온 국민들의 가슴에 멍이 들었다. 사태 초반의 충격적인 반응을 뛰어 넘어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거의 모든 사고는 세 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 사고의 예방, 신속한 구조 그리고 명확한 수습이다. 이번 사고는 예방부터 실패했다.

좁디좁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골목 안에 13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상황이라면 어느 누가 보더라도 비상 상황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인구 분포를 보면 경상남도 통영시의 인구가 13만 명 정도라고 한다.

통영시 전체 인구에 해당되는 인파가 한꺼번에 이태원의 좁은 지역에 핼러윈 행사를 위해 모였다고 보면 된다.

이번 참사의 가장 큰 원인은 ‘밀집’이다. 한강변 고수 부지에 10만 이상의 인파가 모인다고 하더라도 개방성이 크고 출입의 분산이 유지되므로 사고 위험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240 제곱킬로미터에 해당되는 통영시와 달리 이태원은 불과 몸을 겨우 비켜갈 정도의 매우 협소한 지역이다. 비정상적으로 많이 인원이 모이면 통제와 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런데 초비상 상황의 국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어느 누구도 적극적인 예방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인재 참사다.

마치 민심은 천심이라는 진리를 절묘하게 확인하는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 그리고 여야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내려졌다. 한국갤럽이 자체 조사로 1~3일 실시한 조사(전국1001명 유선포함 무선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응답률10.4% 자세한 사항은 조사 기관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잘못 수행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직전 조사보다 1%포인트 내려간 29%로 나타났다. 다시 20%대로 주저앉았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정당 지지율을 물어본 결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직전 조사보다 1%포인트씩 하락해 각각 34%, 32%를 기록했다. 민심은 천심이다. 1%포인트지만 대통령부터 여야 국회까지 ‘1%의 경고장’을 국민들은 날렸다.

예방에 실패했지만 구조라도 성공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녹사평역과 이태원역 사이의 교통 통제를 하지 않으면서 참사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태원역 주변 그리고 해밀턴 호텔 근처는 거의 교통 지옥 상태였다. 차량이 토요일 저녁 시간의 혼잡과 인근 용산 대통령실 주변의 집회와 시위 상태로 마비 일보직전 상황이었다.

29일 늦은 밤 참사가 발생하자 용산 주변의 구조 차량과 앰블런스가 총출동했지만 교통 혼잡 상태로 사고가 일어난 그 지점까지 가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악재는 혼자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구조에 추가적으로 걸림돌이 된 결정적인 상황은 이태원역 무정차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의도 한강 고수 부지는 개방성이 최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불꽃 축제를 할 때면 여의나루역 주변을 ‘차 없는 거리’로 교통 통제하고 혼잡 시간대는 여의나루역을 무정차시킨다.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을 경우에도 지하철역 이용객 수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필요한 경우에 조치를 취한다. 이태원역에 탑승객과 하차객이 버젓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을 CCTV로 확인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배경은 추적해서 밝혀내야 한다.

구조마저 실패했다면 수습이라도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수습 과정에서 내 책임이라며 나서는 공직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들 법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발뺌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태원의 행정을 관할하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사람들이 많이 이태원으로 몰려들어 위험했던 상황은 일종의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표현은 이태원과 전혀 무관한 누군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를 개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가 벌어지고 난 직후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거의 매일같이 합동 분향소를 방문해 조문을 하고 있지만 국민 공감대는 별로 높아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관심이나 기대가 더불어민주당 쪽으로 옮겨간 것도 아니다.

이태원 참사는 정치적으로 누구에게 이익이 갈지 그리고 누가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정확히 실체를 규명하는데 있다. 두 번 다시 이 땅에 소중한 생명이 운명을 달리하는 비극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아로 새기는 중차대한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태원 참사는 어떤 성격의 참사로 분석할 수 있을까. 우선 ‘인사 참사’다. 8년 전의 세월호 참사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건강한 사회는 치명적인 교훈을 통해 성장한다. 지난 참사에서 가장 먼저 확인했던 교훈은 비상 위기 상황을 대비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적 배치다.

경찰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범죄 척결을 위한 최전선에 서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와 같은 선제적으로 대응이 필요한 사태는 미리 관련 상황을 점검할 수 있는 인물이라야 한다. 이번 참사로 문제가 되면서 국가수사본부로부터 압수 수색 당하고 있는 기관들에게 요구되었던 자세는 선제적인 대응이었다.

수사를 통해 철저히 진실이 가려져야겠지만 뉴스토마토와 미디어토마토 조사(2022년 10월 31일~11월 2일 전국1072명 무선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0%P 응답률4.7% 자세한 사항은 조사 기관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는 국민들이 이번 사태를 공직자의 문제로 보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정부와 지차체의 책임이 있는지’ 여부를 물어본 결과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 73.1%로 압도적이다. 경찰 조직을 비롯해 행정안전부와 용산구청을 포함한 자치단체까지 제대로 된 인물이 없었다. ‘인사 참사’다.

이 외에도 경찰 내부의 보고 혼란, 122 신고 전화 대응 부실 등 국민으로부터 신뢰성을 거덜 내는 ‘소통 참사’다. 특히 수십 차례의 현장 위험을 알리는 신고 전화를 받고도 출동하지 않은 책임은 아무리 변명을 해도 가볍지 않다. 경찰과 행정 중 어느 한 쪽이라도 제대로 대응을 했다고 하면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소통 참사’외에 이태원 참사의 원인으로 지적해야 하는 것은 ‘정치 참사’다. MZ세대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참사가 발생했지만 정치권은 정쟁적 공방으로 날이 새는지 모르고 있다. 정쟁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세월호 참사’까지 소환하고 있다. 이상민 장관의 경질설과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조사 요구는 또 다른 정치적 참사를 예고한다. 이태원 참사가 무슨 참사인지를 누가 묻는다면 지체없이 ‘인사참사’, ‘소통참사’, ‘정치참사’로 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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