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註> '독찰(督察)'은 권력 집단을 감시하고(督) 살피는데(察) 앞장서 온 경실련 권오인 경제정책국장의 전문 칼럼입니다. 시민사회 현장의 생생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공공 영역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독'하고 '찰'지게 진단해 드립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 국장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 국장

4월 10일 치러질 22대 총선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당 및 후보자 간 포퓰리즘 공약 경쟁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경쟁은 사회복지 분야도 있지만 부동산과 공공건설사업 즉, 개발공약이 가장 심각하다. 특히 여당인 국민의힘과 국회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개발공약 경쟁은 가관이다.

대표적인 개발공약은 철도·도로 지하화와 GTX 건설이다. 국민의힘은 수도권과 지방 주요 도시를 대상으로 2025년까지 ‘철도지하화 통합개발 종합계획’을 수립한 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업에 필요한 비용은 철도부지 상부개발 수익 등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GTX는 B와 C노선의 경우 2024년 상반기에 착공하고, D·E·F 노선은 5차 국가철도망 계획에 반영하여 2035년 개통을 목표로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철도와 GTX, 도시철도 등 모든 철도의 도심구간을 지하화하고, 건폐율과 용적률 특례를 적용해 친환경 주거복합 시설을 조성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철도 및 도로 지하화에 들어가는 비용은 국민의힘이 65조2000억 원(국토교통부 자료), 더불어민주당은 80조원 가량을 제시했다. 양당이 제시한 재원은 GTX 건설까지 할 경우 100조 원이 훌쩍 넘어갈 것으로 판단된다. 재원 마련 방안으로 국민의힘은 철도부지 상부개발 수익과 정부 철도부지 출자 및 민간자본 유치, 더불어민주당은 민자유치와 정부 현물출자 등을 언급했다.

철도와 도로가 지하화된다면 도시미관과 소음 및 분진 등 환경적 측면, 철도와 도로로 분절된 지역 통합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GTX 건설은 교통의 편리성과 시간적 비용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백조원의 가까운 재원이 투입되는 만큼, 정책 우선순위가 높은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판단해봐야 한다. 이 정도의 재정이면 가령 3조 원이 들어가는 철도를 30개나 만들 수 있고, 부족한 복지나 의료, 교육 등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 공약들이 포퓰리즘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재원 마련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철도와 도로 지하화는 60조 원에서 80조 원 정도의 막대한 재원이 들어가는 사업이지만 구체적인 방안도 없이 정부 출자, 민자유치, 상부개발 수익이라는 추상적인 방안만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불투명한 묻지마식 개발공약이 추진된다면, 향후 재원조달 문제로 인해 좌초될 수도 있고 재정낭비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GTX 역시 향후 비싼 요금 문제와 민간사업자에 대한 특혜 시비가 벌어질 수 있다. 수도권 집중 심화와 부동산 투기와 같은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철도 및 도로 지하화 공약에만 60조원 이상의 재원이 들어가고, 도심복합개발, 공항 건설 등의 각종 개발공약과 향후 발표될 공약까지 고려한다면 공약이행을 위한 예산이 수백조 원 또는 수천조 원이 필요할 수 있다. 천문학적인 국민의 혈세가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공약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숙의와 준비가 필요하다. 공약으로서의 실현가능성과 가치성, 정책 우선순위, 수혜 계층, 기대 효과 등에 대해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총선이 임박해 허겁지겁 던지거나 이해관계자 집단이 제안하는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여 발표하거나 공약집에 나열한다면 국민과 국가를 위한 공약보다는 특정 집단의 특혜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용인시 재정을 파탄까지 몰아갔던 용인경전철 관련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법원이 주민들에게 손을 들어준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스물두 번째 총선에 임하면서도 여전히 개발공약으로 국민과 유권자를 현혹하는 정치권의 현실을 보면 암담하다. 묻지마식 개발사업의 피해자는 우리 국민 전체이자 후손들이다. 따라서 잘못된 개발공약과 사업추진으로 인해 국가와 국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가칭 국책사업위원회라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상설 기구를 설립하여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나아가 공사비와 실시협약서 등 사업추진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시장에서 상시적으로 감시되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개발공화국’, ‘토건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저작권자 © NGO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