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註> '독찰(督察)'은 권력 집단을 감시하고(督) 살피는데(察) 앞장서 온 경실련 권오인 경제정책국장의 전문 칼럼입니다. 시민사회 현장의 생생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공공 영역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독'하고 '찰'지게 진단해 드립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 국장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 국장

3월은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몰려있는 달이다. 주주총회에서는 사업 관련 안건도 있지만 이사 선임과 같은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안건도 주요하게 올라온다. 때문에 3월이 되면 언론을 통해 어떠한 인사들이 이사 후보로 추천되고 선임되었는지에 대한 기사가 많이 보도된다.

지난 5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출과 자산순위 30대 그룹의 사외이사 후보들의 상당수가 관료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그룹 237개 계열사 중, 4일까지 신규 사외이사를 추천한 71개 기업이 제출한 주주총회 소집결의서상의 103명의 사외이사 후보 중 관료 출신이 41명(41.4%)으로 집계되어 압도적이었다.

사외이사는 회사의 경영진에 속하지 않고, 상무에 종사하지 않는 이사로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고 대주주에 대한 견제는 물론, 기업 경영의 투명성 공정성 확보, 주주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본격 도입되었다. 상법에서는 2009년에 명문화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외이사제도는 유명무실해져 소위 ‘거수기’, ‘기업 방패막이’, ‘정부 로비 창구’라는 오명까지 받고 있다. 실제로 매년 사외이사들의 안건에 대한 가결률은 99%가 넘고 있으며, 반대 의결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1월 CEO스코어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작년 상반기 기준 국내 시가총액 100대 기업 이사회를 분석한 결과 총 투표수 8906표 중 사외이사가 행사한 반대표는 38표로 전체의 0.4%에 불과했다. 이렇듯 사외이사는 거수기 역할도 모자라 관료 출신 즉, 관피아들이 대거 영입됨에 따라 정경유착과 로비의 창구는 물론, 기업 방패막이 역할까지 하고 있다. 사외이사제도의 도입 취지가 사실상 붕괴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민간기업의 사외이사로 가는 관료들은 대부분 기업정책과 관련된 정부 부처 퇴직공직자들이 많다. 특히 재벌 정책, 공정거래법과 소비자 관련법을 주요 소관으로 하는 공정거래위원회, 기업 조세정책과 직결된 기획재정부, 금융감독 및 정책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경제범죄 관련 형사처벌과 상법 등을 담당하는 법무부, 환경관련 제도를 운용하는 환경부, 산업정책을 관장하는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관련 부처 출신들이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현직 공직자와 연결고리가 있고 정부 기업정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퇴직 관료들을 사외이사 또는 임원으로 영입한다면 법제도적 리스크와 이에 따른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해 영입 경쟁을 벌인다. 퇴직 또는 퇴직을 앞둔 관료의 입장에서도 고액 보수는 물론, 기업들과의 연결고리를 통해 향후 민간기업의 임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선호하고 있다. 소위 서로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자리이다.

관피아로 인한 기업지배구조는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와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미친다. 국가 경제의 차원에서는 불건전한 지배구조 리스크에 따른 코리아디스카운트가 발생하고, 정경유착 부패로 인해 불공정한 시장구조가 형성된다. 기업 경영의 측면에서도 총수일가와 경영진에 대한 견제 부재에 따른 오너리스크와 불투명하고 비윤리적인 경영으로 인해 기업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이러한 관피아를 선호하는 기업지배구조 문제는 상법 개정 등 법제도를 통해 해결하는 방안과 기업 스스로 ESG 경영 차원에서 개선하는 방안이 있다. 법제도적인 방안으로는 공직 퇴직 후 재취업 제한 기간을 5년으로 늘리는 등의 공직자윤리법 개정, 소수주주의 추천을 받은 인사를 사외이사의 과반이상 선임토록 하는 상법 상 소수주주동의제 도입을 우선 고려할 수 있다.

무엇보다 ESG 경영 차원에서 기업 스스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결단을 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관피아들을 통해 기업들이 처한 법제도적 리스크를 방어한다고 해도 중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이들의 영입에 대한 유혹을 과감하게 끊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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