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가 모 언론사가 정치에 관한 국민 관심도 제고 등을 위해 ‘가상 정당 지지도’ 설문이 포함된 여론조사 설문지를 작성해 질의했으나 불허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에 긍정적·부정적 이미지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는 이유에서다.

선관위가 문제 삼은 질문은 설문 마지막 항목인 ‘가상 정당 지지도’였다. 설문지는 ‘마지막으로 가상의 정당에 대한 지지도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만약 다음의 정당들이 이번 총선에서 후보를 낸다면 어느 정당에 투표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1번 재명당, 2번 동훈당, 3번 낙연당, 4번 준석당, 5번 조국당, 6번 기타당, 7번 무당파, 8번 모르겠다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구성돼 있다.

A언론사가 선관위에 제출한 '22대 국회의원 선거 대국민 인식 조사' 설문 중 일부./캡처 이미지
A언론사가 선관위에 제출한 '22대 국회의원 선거 대국민 인식 조사' 설문 중 일부./캡처 이미지

 

A언론사 관계자는 “선거조사 실시 2일전 신고의무제가 있어 신고하려는데, ‘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답변이 왔다. 선관위가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을 한다면 사실상 여론조사 허가제 아니냐”며 “선관위의 답변도 ‘위반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여론조사를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최근 A언론사는 <22대 국회의원 선거 대국민 인식 조사> 설문지를 선관위에 신고하려고 했다. 공직선거법 제108조 제3항에 따라 선거여론조사를 실시하려면 관할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여론조사의 목적, 표본의 크기 등을 담은 설문을 작성해 서면으로 여론조사 개시일 전 2일까지 신고해야 한다.

'가상 정당 명칭' 관련 선관위로부터 '불허' 유권해석을 받은 A 언론사가 선관위에 질의한 내용/캡처 이미지
'가상 정당 명칭' 관련 선관위로부터 '불허' 유권해석을 받은 A 언론사가 선관위에 질의한 내용/캡처 이미지

 

A언론사는 이에 따라 여론조사 실시 이틀 전인 지난 8일 선관위에 신고하려 질의했지만 선관위는 ‘가상 정당 지지도’ 항목 설문이 “선거여론조사기준 제6조에 위반될 수 있을 것”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던 것.

NGO저널이 입수한 답변에 따르면 선관위는 “귀하가 첨부하신 여론조사 질문지의 질문 내용, 순서 및 현 시점 정당 등록상황·정치적 이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았을 때 질의하신 ‘가상 정당 명칭’은 가상의 정당이 아닌 실제 등록된 정당을 표현하는 명칭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바 귀문의 ‘가상의 정당명칭’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에 대하여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이미지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의 질문지 작성을 금지하는 ‘선거여론조사기준’ 제6조에 위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NGO저널이 입수한 '가상 정당 명칭' 관련 A언론사가 선관위로부터 받은 답변/캡처 이미지
NGO저널이 입수한 '가상 정당 명칭' 관련 A언론사가 선관위로부터 받은 답변/캡처 이미지

 

선관위 “애매한 표현, 선거법 유권해석에서 기인… 여론조사 가능하나 선거법 위반 예방 차원”

선관위 담당자는 이와 관련 NGO저널과의 통화에서 “선거 여론조사기준에는 질문지 작성과 관련해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에 대하여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이미지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 금지되어 있어 해당 조항을 근거로 안 된다고 답변했다”고 설명했다.

선관위 담당자는 ‘위반될 수 있다는 답변은 달리 해석하면 위반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도 있어 모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설문지 가상 정당 이름으로 사람) 이름이 들어가선 안 된다는 명확한 규정은 없기 때문에 법규정에 따라 저희가 해석해 사전 안내 차원에서 답변한 것으로서 해당 문항이 실제 조사됐을 때 위법일지는 그때 가서 조사해봐야 아는 것”이라며 “실제 조사 때에는 해당 문항 뿐 아니라 표본구성, 대상 등 총체적으로 봐야한다. 그러나 일단 해당 문항을 써서 조사했을 때 기준상 위반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답변한 것이고, ‘위반될 수 있을 것’이라는 표현은 선거법 유권해석에서 통상적으로 쓰인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실제 법 위반 여부는 사실 법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고 저희는 사전에 유권해석 정도를 할 수 있는 것이라서 만약 실제 법원 판단을 받을 경우 위반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그런 이유로 ‘위반될 수 있을 것’이라는 문구를 쓴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선관위 담당자는 ‘여론조사 설문항에 대한 지나친 자의적 해석으로 신고제 아닌 사실상의 허가제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해당 문항으로 실시한다면 신고서 서식상 위반 사항이 없다면 선관위가 사전에 무조건 하지 말라고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질문지 검토를 우리가 해드리는 것은 해당 검토를 조사기관에서 원하기도 하고, 나중 위반 사항이 발생했을 때 선관위가 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그래서 여론조사를 하고자 하는 곳에서 사전에 질의하고 저희도 사전에 선거법 위반을 예방하기 위해 검토해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선관위는 A언론사 가상정당 지지도의 ‘재명당’ ‘동훈당’ 등의 표현이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여론조사기준 제6조를 위반한다고 봤다.

'선거여론조사기준' 제6조(설문지의 작성 등) 1항은 ‘누구든지 피조사자의 응답이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편향될 수 있는 다음 각 호의 내용으로 질문지를 작성하거나 질문하여서는 아니 된다.’며 ▲주관적 판단이나 편견이 개입된 어휘나 표현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에 대하여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이미지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 등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선관위는 지난 총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이준석 신당’과 ‘이낙연 신당’ 등 특정 정치인의 이름이 들어간 여론조사 설문을 허용한바 있다.

선관위 담당자는 이에 대해서는 “이준석 신당 등과 같은 경우는 창당 이야기가 정치적으로 나왔던 것이고 그것과 관련해 국민의 의견이 어떤지 조사하는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 점을 고려해 가능하도록 운영했던 것”이라며 “그러나 ‘재명당’, ‘동훈당’의 경우, 가상의 정당이라고는 했지만 등록된 정당에 대한 지지도나 인지도 조사하는 것이어서 등록된 정당의 명칭으로 조사해야 하지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해 이미지 연상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으로 조사하게 되면 기준 위반”이라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또 ‘특정 정당 및 후보자에 대한 긍부정 이미지 연상 유발이 불허의 이유라고 했는데, 재명당, 동훈당과 같이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란 명칭 역시 사람들 시각에 따라 긍부정을 연상시키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해당 조사 목적이 (사실상) 정당 지지도 등을 알기 위한 선거여론조사를 위한 것 아니냐”며 “또 (가상 정당 명칭이) 특정 후보자이기도 하다. 정당 대표이기도 하지만 후보이기도 해서 기준 위반”이라고 했다.

이 담당자는 ‘재명당, 동훈당 등의 가상 정당 이름으로 설문할 경우, 여론조사 상 특정 정당에 유불리하게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법적으로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 그 기준으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담당자는 “해당 언론사 조사 질문지 구성을 보면 정당에 대한 평가 문항이 있고 당 대표와 정당 명칭이 계속 등장하고 마지막에 재명당, 동훈당 등의 설문이 나온다”며 “이 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은 사람들은 당연히 가상 정당이 어떤 정당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고, 그렇다면 특정인 이름이 들어간 특정 정당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되느냐의 문제이고 따라서 저희는 마지막 설문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해 긍부정 이미지를 유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 언론사는 선관위의 이 같은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해당 질의서 그대로 여론조사를 위해 신고할  것으로 전해졌다.

선관위의 또다른 담당자는 그럴 경우 허가할 것인지 묻자 “다시 신고한다면 다시 검토하겠지만 관계법 또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다고 판단될 경우 보완을 요구할 것”이라며 “해당언론사는 여론조사 실시 전까지 보완해야 하고, 이 보안 요구에 대해 이의가 있다면 이의제기할 수 있다. 이의 신청을 한다면 심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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